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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베르 카뮈 '페스트' 역주행 진짜 이유(Feat. 책읽어드립니다)
    Art IN 2020. 3. 1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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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감염병을 다룬 대표 소설 '페스트'를 찾는 독자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습니다.

    고전 소설이 역주행을 하며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인데요, 페스트의 역주행 인기 이유와 줄거리, 어떤 판본을 봐야 하는지까지 짚어보겠습니다.

    ● 알베르 카뮈 '페스트' 기본 정보


    '페스트'는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걸작 장편 소설로 1947년 갈리마르(Galimard) 출판사를 통해 발표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1940년대 프랑스령 알제리 북부 해안의 작은 도시 오랑(Oran)에서 갑작스럽게 페스트가 발생하고, 그에 따라 외부와 격리 조치가 취해지면서 오랑 시는 외부와 단절되고 시민들은 고립됩니다. 그렇게 외부로부터 고립된 채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씩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상황이 1년 동안 지속되면서 드러나게 되는 인간 존재의 실존을 철학적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주인공이자 의사인 베르나르 리외(Bernard Rieux), 그의 협력자인 말단 공무원 조제프 그랑(Joseph Grand), 기득권층 출신의 반항아 장 타루(Jean Tarrou)를 중심으로, 오랑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음에도 결국 떠나지 않고 리외를 돕기로 결심하는 파리에서 온 신문기자 레이몽 랑베르(Raymond Rambert), 흑사병을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주장하는 판느루(Paneloux) 신부, 흑사병으로 야기된 혼란한 상황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챙기는 코타르(Cottard) 등이 이야기의 중심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닥친 결코 피할 수 없는 재난적 운명 앞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재난소설, 재난영화 등 장르의 효시로도 꼽힙니다.

    배경이 알제리의 도시인데, 등장 인물들은 모두 프랑스 출신이고, 아랍인, 베르베르인 등 해당 지역 주민들은 등장은커녕 언급되는 부분도 없습니다. 마치 일본인 작가가 쓴 소설의 작중 배경이 일제강점기 경성 혹은 부산이지만 등장인물은 모두 일본 거류민들이고 조선인들은 언급되지 않는 것과 같은데 카뮈 연구가로 프랑스에서도 알려진 김화영 고려대 교수도 이 점을 언급했습니다. 이는 프랑스가 알제리를 단순히 식민지가 아니라 프랑스의 확장된 영토로 취급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카뮈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알제리는 프랑스의 한 지역이었고, 카뮈는 그 프랑스의 일개 지역에서 태어난 프랑스 태생의 프랑스 소설가였습니다. 그러니 카뮈 입장에서는 당연히, 배경이 프랑스이니 등장 인물도 프랑스인만 등장시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첫 장부터 '오랑 시는 프랑스의 한 도청 소재지에 불과하다'라는 문장이 나오는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페스트 집필 이후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 등에서는 알제리는 프랑스가 아니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소설 집필 이후 생각에 변화가 있었다는 점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 '페스트' 인기 역주행, 왜?


    현재 서점가에서 시판 중인 소설 '페스트'는 20여종에 달합니다.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한 지난 2월1일부터 3월 12일 사이에 이들 '페스트' 소설은 3천500부나 팔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8.2배나 판매량이 증가했습니다.

    심지어 가장 많이 팔린 민음사 페스트(2011년 출간)는 3월 첫 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소설 부문 8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고전 명작 시리즈가 이른바 역주행을 통해 신간이 지배하는 베스트셀러 순위에 재진입하고 판매량이 폭증하는 사례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으로 외출을 자제하면서 집에서 책 읽을 기회가 자연스레 많아진 것과 함께 최근 tvN 독서 프로그램에서 '페스트'를 집중적으로 소개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대문호 카뮈의 '페스트'는 흑사병 확산으로 봉쇄된 도시 안에서 재앙에 대처하는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이를 통해 잔혹한 현실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부조리와 맞서는 것만이 진정한 인간성임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모습이 현재 한국 대도시들의 우울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공감을 일으킨 측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는 분석입니다.

    외신 보도를 보면 '페스트' 다시 읽기 현상은 우리뿐 아니라 이웃 일본, 카뮈의 나라 프랑스, 유럽에서 코로나19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이탈리아 등지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습니다.

    ● 어떤 번역본 봐야 할까?


    가장 인기 있는 판본은 이미 거론한 민음사 판입니다. 한국불어불문학회장을 지내는 등 권위를 인정받는 김화영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가 옮겼습니다.

    문학동네 판본(2015)이 판매량 2위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역자 유호식 서울대 불문과 교수는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3위는 열린책들 판본(2014)으로 프랑스 파리7대학 박사 출신으로 가톨릭대에서 강의 중인 최윤주 교수가 번역했습니다.

    국내 유수 번역가들이 옮긴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지만 아무래도 번역은 개정을 거듭할수록 좋아질 수밖에 없다는 게 출판계와 문학계의 견해입니다. 이미 나온 판본을 참고해 오류를 계속 잡아내고 뉘앙스를 더 한국어적으로 살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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