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 임금 동결 이유
우리나라에는 많은 기업들이 있고, 또 많은 노조들이 있습니다. 사실상 회사와 한몸을 이루는 노조가 있는 반면, 늘상 회사와 대립각을 세우는 노조도 있습니다. 그래서 강성 노조도 있고, 상대적으로 온화한 분위기의 노조도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대차 노조는 국내의 수많은 노조들 가운데 초강성 노조 가운데 하나로 꼽히곤 합니다. 실제 여부를 떠나서 적잖은 사람들은 그렇게 인식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다 보니, 현대차 노조가 임금 인상을 이유로 파업을 하게 되면 보수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라 경제 흔드는 현대차 노조' 등의 기사들을 쏟아내며 노조를 공격합니다. 때로는 노조가 정당한 요구를 할 때도 있지만, 사실 현대차 노조만큼 이런 저런 논란과 이슈 속에 있는 노조를 찾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정국은 참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전 세계 경기 불활이 현실화되면서 현대차 노조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른바 '자발적 임금 동결'이라는 다소 현대차 노조와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완성차 업계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하면서 '강성 노조의 상징'이었던 현대차 노조도 자발적으로 '임금동결' 검토에 나섰습니다. 이게 진짜 현실화되면, 노조 설립 이후 처음있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임금인상 자제 대신 고용 보장"
현대차노조는 4월 17일 "독일 노사가 보여준 위기극복 방향성에 주목해야 한다"며 "노조가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사용자는 고용을 보장하고, 정부는 노동자들의 임금손실을 보전해주는게 포인트"라고 밝혔습니다. 임금을 동결할테니, 대신 고용을 보장하고 손실이 나는 부분은 정부가 보전해 달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여기서 현대차 노조가 언급한 독일식 모델은 독일 금속노조와 사용자단체 간에 이뤄진 '위기협약'을 의미합니다. 노조 소식지를 보면, 독일 노사는 지난달 말이 체결 시한이었던 올해 임금협약을 연말로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임금을 동결한다는 의미이죠. 코로나로 인해 이미 조업이 심각하게 단축된 상황에서 내려진 결정입니다.
대신 독일 사측은 특별상여금 격인 크리스마스 보너스와 휴가비를 12개월로 나눠 분할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독일 연방고용청에서 지급하는 조업단축급여 산정 기준이 인상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해석됩니다. 사측은 또 근로자 1인당 350유로의 기금을 적립해 조업단축으로 인해 생계에 타격을 입은 근로자를 우선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현대차 노사의 최종 결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노조가 먼저 임금 동결을 전제로 하는 노사 협약을 언급한 것 그 자체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임금 협상 시기만 다가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파업 이슈를 선봉에 꺼내들었기 때문에, 현대차 노조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좀 너무 하는 것 아니냐' '귀족노조라 그러냐' 등의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온 것도 사실입니다. 때문에 이번에 노조가 먼저 임금 동경 이슈를 꺼낸 것은 그만큼 코로나19에 따른 완성차업계의 타격에 대해 노조도 깊이 우려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부분입니다.
노조는 "독일식 위기협약을 일률적으로 한국에 적용할 수는 없지만 독일 노사가 보여준 위기극복 방향성에 주목해야 한다"며 "코로나19 위기 속에 '일자리 지키기'라는 대명제 앞에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생존을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현대차노조는 금속노조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강성투쟁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무려 8년만에 무분규로 임금 및 단체협약을 타결시키며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일 경제갈등으로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회사가 고비에 섰다는 위기의식에 노조가 공감대를 형성하며 이룬 의미있는 합의였로 평가됩니다.
물론 올해의 상황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단순히 국내 경기 불황 수준이 아니라 대공황보다 더한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피치는 수출시장 붕괴로 현대차가 유동성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한 점도 그냥 흘려듣고 넘어가지에느 무게감이 너무 크게 다가오는 부분입니다. 4월 들어 자동차 수출이 7% 이상 줄어든 가운데 상반기 국내 자동차 생산량이 30만대 이상 줄어들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가 유동성 위기를 정말 겪게 되면 한국 경제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미국과 인도는 물론 유럽 공장들의 셧다운(가동중단)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도 노조로서는 무시하기 어려운 현실이 됐습니다. 이 가운데 수요 감소의 파도는 국내 생산기지도 여지없이 덮치고 있습니다. 일자리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노조를 움직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현대차노조가 그간 '불가침 영역'으로 정했던 혼류생산에 대한 검토를 시사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 혼류생산은 한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동시 생산하는 방식인데요. 글로벌 완성차업체에선 일반적이지만 현대차에서는 특근 등 공장 간 일감 배분 문제로 노조가 강력 반발, 이뤄지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이어지면서 현대차 노조가 이런 부분, 즉 효율성에 대해서도 접근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노조는 그러나 전날 소식지를 통해 "공장별 다차종 혼류생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며 "합리적 배치전환 문제 등 생산시스템에 대한 정책적 고민을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혼류생산 문제를 직접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것의미입니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현 노조 집행부는 당선 초기부터 합리적인 성향이라는 평을 받아 왔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례없는 위기를 맞아 노조가 먼저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회사가 이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제시되는 모습입니다.
노조, 임금협상 시기 신중히 고민중
이런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밝힌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 시기를 신중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노조는 지난 4월 14일 소식지를 통해 “지금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회사의 영업이익이 날 수 없는 구조”라며 “2020년도 임금협상에 악재가 많아 노조가 성과를 내기 불리한 조건”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임금협상을 당장 진행하기 어려운 조건으로 신중히 접근할 것”이라며 “모든 지혜를 모아 조금이라도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 협상시기를 결정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재 현대차 노조는 노사협의회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다음 주부터 기획실을 중심으로 위원회와 사업부별 안건을 신청받아 확대 운영위원회에서 올해 임금협상 안건을 확정할 계획입니다. 이후 이달 말 경영설명회를, 노사협의회는 다음 달 초나 중순경으로 잡고 있습니다.
현대차 상황도 이미 심각 궤도에 올라
이처럼 노조가 상식적인 수준의 도출을 서로 기대하는 데는 이미 코로나로 인한 타격이 현대차에도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현대차는 최근 그랜저와 아벤떼 신형 등이 굉장한 인기를 끌었지만 3월 판매량은 30만80503대(국내 7만2180대, 해외 23만6323대)로 감소했습니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0.9% 준 것입니. 감소폭으로만 보면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9년 1월(-26.7%) 이후 최대치인 만큼 노사 모두 긴장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신차효과와 개소세 70% 인하 효과 등으로 내수는 3% 증가했지만 해외 판매는 26.2% 감소했습니다. 문제는 2분기부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타격은 아직 시작 전 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전 세계가 코로나19 영향권에 본격 진입하면서 현대차의 미국, 유럽, 인도, 브라질 등 거의 모든 권역 본부의 공장이 ‘셧다운(일시폐쇄)’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현대차는 물론 국내 완성차 업계가 입게 될 타격, 그리고 이어질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타격 역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